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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교수 취재] 백세범 교수.jpg

 

이번 달에는 백세범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해보았습니다. 백 교수님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UC Berkeley)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취득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엔젤레스 (UCLA)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친 뒤 2013년도부터 카이스트 교수로 임용되어 시각신경시스템 연구실에서 인간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시각 정보 처리에 대한 모델을 세우는 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Q1.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교수님께서 주로 진행하시고 계시는 연구 분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저는 두뇌의 주요 기능이 발생하는 원리에 대한 기저 모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요 기능이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행동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능력인데, 시각 기관을 통해 외부 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여 사물을 인지하고 구별해 내는 능력, 또는 이런 정보를 저장하여 기억하는 능력, 정보가 불충분할 때 이전에 입력되었던 정보의 경험을 통하여 능동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능력 등이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기본적인 기능들 조차 단순한 형태의 프로그램으로는 구현하기 힘들어서 최근까지도 인공지능으로는 비슷하게 재현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기능들을 우리의 두뇌는 실제 물리적인 회로를 통해 구현해 내고 있고, 심지어 너무나도 단순한 반응 함수에 따라 동작하는 신경세포들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 낸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러한 뇌기능의 발생을 위한 기저 원리를 이론적인 모델을 통해, 그리고 모델 신경망 시뮬레이션을 사용해서 연구합니다.  

 

 

Q2.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분야가 참 흥미로운 분야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교수님과 연구실에서 진행한 연구들을 보면 두뇌의 다양한 정보 처리 과정을 다루면서도, 연구실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각 정보에 관련된 연구를 많이 진행하시는 것 같아요. 혹시 다양한 두뇌 기능 중에 시각 정보 처리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으실까요?

 

- 뇌의 기능을 연구한다는 측면에서 시각정보 처리 프로세스에 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내용들을 다룹니다. 뇌는 감각 기관을 통하여 외부 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모든 행동 기능을 수행하는데, 시각 정보가 이러한 감각 정보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요. 사실상 두뇌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준비되어야 하는 기능을 다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뇌신경과학분야 연구는 초기 시각신경시스템의 연구를 통해 크게 발전해 왔습니다. 사실 인공지능에 관한 기초 연구도 대부분 시각 정보의 인식과 처리 기능에 관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요. 저도 처음부터 시각을 연구할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음악과 음향학, 청각 정보 처리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결국 그런 관심사를 풀어나가는 것은 뇌의 연구를 통해 가능하고, 뇌의 기능을 연구하는 것은 시각 정보 처리에 관한 연구를 통해 수행할 수 있겠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이쪽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지금도 연구실에서는 시각 시스템에 관한 연구만 하는 것은 아니고, 시각 정보에 기반한 여러 인지기능들, 작업기억이나 의사 결정, 그리고 최근에는 기존의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의 인공신경망의 설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들을 모두 포함할 수 있도록 연구실 이름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론 및 계산뇌과학 연구실” 정도면 어떨까 싶네요.

 

 

Q3. 이런 분야의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께서는 어떤 학생들이 시각 인지, 시스템 신경과학이라는 분야를 연구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 먼저 이 질문이 가정하고 있는 내용을 조금 뒤집어 보면 “어떤 학생들은 이 분야를 연구하기에 맞지 않거나 덜 적합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지 않나요? 잘못하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겠고,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자면 “문제해결능력”이 되겠네요 (구글 등의 입사시험에서 이런 능력을 중점적으로 본다는 것 같기도…).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정해진 답이 있고 지식을 기억해서 이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답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문제를 자신의 전략과 논리를 가지고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 학생이라면 무조건 환영일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 모든 종류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4. 교수님의 이력과 이전 인터뷰를 보면 교수님께서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셨었고 앞으로 나아가시는 과정에서 어떤 길이 맞는지 고민하셨던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학생들이 요즘도 많다고 느끼는데, 먼저 그런 순간을 겪어 보신 선배로서 해주실 수 있는 충고나 조언이 있을까요?

 

- 기대한 내용과는 많이 차이날 수 있는 대답일 수도 있는데, 사실 이 질문의 내용은 카이스트에 부임한 이후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경험하면서 계속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주변의 많은 학생들이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가?”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하더군요.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이 길이 맞다,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각각의 길에 점수를 매길 수 있어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오직 단 하나의 정답이 있고, 나머지는 옳지 않다는 뜻인가? 그 판단은 누가 내려줄 수 있는가? 아마도 현재의 상황이 잘 풀리지 않거나, 뭔가 자신이 상상한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다를 때 “이것은 내가 잘못된 길을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종종 그런 고민이 있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줍니다. “이 길이든 저 길이든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에 틀린 선택이란 것은 없다. 그 길이 잘 안 풀린다면 뭔가 노력을 해서 잘 되게 만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판단아래 다른 길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그런 선택들은 객관식 문제의 보기들이 아니며, 어떤 선택도 잘못된 것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길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답을 내려고 고민한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여러가지 문제들로 고민하는 것은 인생의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고, 그때마다 고민의 구체적인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고민은 짧고 굵게 할수록 좋습니다.  

 

 

Q5. 마지막으로 교수님과 같은 연구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직 저는 연구자의 삶에 대해 특별한 조언을 할만한 경험이 쌓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신 연구자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실한 기준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박사학위 지도교수님은 30대 초반에 이미 과학계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업적을 이루신 분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별 도전 없이 그냥 즐기기만 해도 되는 그런 상황에서, 연구 분야를 두 번이나 바꾸어 가면서 전혀 다른 분야에 대한 도전을 추구하셨고, 그때마다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 너무나 즐거우셨다고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지도교수님의 가장 인상깊었던 모습은 어느 외부 초청 연사의 세미나에서 맨 앞줄 학부생들 사이에 끼어 너무나도 즐거운 모습으로 강연을 경청하고 질문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명성을 얻었는가 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단 한가지 항목, 연구 자체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고 순수한 모습을 가지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그 연구자를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태현 기자, gth0918@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