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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남 교수님 > 

 

 

왜 연구하는가를 잊지 않는 일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김필남 교수가 말하는 인류애와 연구자의 태도

[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생 노경미]

 

“암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살아남는가.”

 

김필남 교수가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며 꺼낸 질문은 간결했다. 그러나 그 답을 찾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암세포 자체뿐 아니라 세포를 둘러싼 조직과 물리적 환경, 면역체계와의 상호작용까지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암을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본다. 암세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때로는 장기의 기능과 생태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암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려면 먼저 그 생태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떠한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 알려면, 그것을 정확하게 알지 않고서는 어렵잖아요. 우리는 정말 모른다는 것이 답이었고, 그렇다면 한번 알아보자는 것이 연구의 시작이었어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미지의 영역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 김 교수의 연구는 이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태도에서 출발했다.

 

 

하나의 세포보다 전체 시스템을 바라보다

 

김 교수의 연구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환경’이다. 학부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한 그는 박사과정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이후 생명과학과 공학이 만나는 분야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환경공학은 하나의 학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다. 대기 중 입자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물리학과 통계학이 필요하고, 유체의 흐름을 파악하려면 기계공학이 필요하다. 어떤 물질을 제거하거나 변화시키는 과정을 연구하려면 반응공학에 대한 이해도 요구된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은 암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김 교수는 하나의 세포에서 특정 신호만을 관찰하기보다, 전체 시스템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해체하거나 다시 구현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져왔다. 

 

단편적인 현상보다는 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식으로 악화되고 어떤 식으로 좋아지는지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 환경공학에서 시작된 시스템적 관점이 기계공학을 거쳐 암의 미세환경을 연구하는 현재의 방향으로 확장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김 교수가 생명과학을 처음부터 익숙하게 다뤘던 연구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박사과정에 들어갔을 때 마침 기계공학과에 바이오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교수가 새로 부임했다. 기계공학과에서 생명을 다룬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고, 그는 그 교수의 첫 제자가 됐다. 공학 분야를 두루 공부한 그에게 생물학은 아직 충분히 접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바로 그 낯섦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한 호기심의 출발점이 됐다.

 

김 교수는 연구 주제를 결정하는 데 시기나 유행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연구자의 성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에 같은 분야를 접하더라도 연구자마다 서로 다른 질문을 선택하는 이유는 각자가 무엇을 흥미롭게 여기는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은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오랜 연구 과정을 지속할 수는 없다. 김 교수는 실패와 반복, 불확실성을 견디며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왜 이 연구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를 지속하게 하는 동기, 인류애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게 하는 동기를 ‘인류애’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라며 웃었지만, 그가 설명한 인류애는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병을 겪는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과 공포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특히 ‘암’이라는 한 음절의 단어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은 김 교수가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자신의 연구 주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직접적으로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는 동기가 있어요.”

 

좋은 논문을 발표하거나 교수가 되는 것과 같은 목표에는 비교적 분명한 도달 지점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고통을 줄이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겠다는 목표는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목표가 연구를 오래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동기가 분명해진 뒤에는 논문을 쓰는 과정도 이전과 달라졌다고 한다. 김 교수가 암 연구를 시작한 뒤 처음 작성한 논문에서는 연구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일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이전에는 자신이 다루는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은 문제인지 정의하고, 기존 방법보다 새로운 연구가 왜 더 나은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설득해야 했다. 반면 암 연구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질문과 연구의 필요성이 비교적 분명했다.

 

“이 연구를 왜 해야 하는지를 서술하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 간단했어요. 누구를 설득하기 위해 억지로 이유를 만들 필요가 없었죠.”

 

연구의 방향과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연결될 때, 연구자는 보다 지속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얼마나’보다 먼저 물어야 할 ‘왜’

 

오늘날 연구의 성과는 여러 수치로 평가된다. 얼마나 효율적인지, 얼마나 정확한지, 얼마나 저렴한지, 어느 저널에 논문이 실렸는지가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된다. 물론 이러한 기준도 필요하지만, 김 교수는 그보다 먼저 우리가 연구라는 수단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의 방법과 성과를 평가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본래의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뒤바뀔 수 있다. 연구가 더 높은 평가와 더 좋은 수치를 얻기 위한 활동으로만 받아들여질 위험도 있다.

 

김 교수는 연구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왜 이 문제를 연구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질문을 발견하고 탐구하는 일은 연구자가 담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실패 대신 다른 결과를 얻는 과정

 

연구의 목적에 대한 김 교수의 생각은 실패를 바라보는 태도와도 이어진다.

 

“과학자는 실패라는 단어를 갖고 있지 않아요. 다른 결과, 예측하지 않은 결과, 내가 생각하지 않은 결과가 있을 뿐이에요.”

 

실험에서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논문이 거절되는 일은 연구자에게 흔히 일어난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결과도 기존의 가설이나 방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다음 질문으로 연결하는가에 따라 연구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김 교수는 과학의 과정에는 시도와 결과가 있을 뿐이며, 자신이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과정을 실패라고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논문의 가치 역시 저널의 명성이나 수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필요로 하는 ‘적절한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비록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해당 분야의 연구자 한 사람이 그 논문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다음 연구를 시작한다면 그것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가 될 수 있다.

 

 

인류 지식의 보고에 작은 흔적을 남기는 일

 

김 교수는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보며 과학자가 축적해 온 지식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연구 결과를 학습하고 서로 연결해 새로운 정보와 관점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며, 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쌓아 온 지식이 비로소 더 많은 사람에게 활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인류의 백과사전’에 비유했다.

 

한 편의 논문이 당장 세상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 연구자는 거대한 지식체계 안에 한 페이지나 한 문장, 어쩌면 마침표 하나를 보태는 데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축적된 연구 결과는 인공지능을 통해 새롭게 발견되고 다른 지식과 결합하면서,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독자와 질문을 만날 수 있다. 당장 그 쓰임을 알 수 없었던 한 편의 논문도 새로운 연구와 발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류 보편의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페이지나 두 페이지, 마침표 하나라도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일은 단순히 개인의 실적을 쌓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공동체에 전달하고, 다음 사람이 활용할 수 있도록 남기는 과정이다. 김 교수는 연구를 공개하고 기록하는 것 역시 연구자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 과정은 혼자 이루어지지 않는다. 김 교수 역시 새로운 연구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 그리고 KAIST의 훌륭한 연구 환경을 꼽았다. 특히 암의 원리를 이해하는 연구에서 치료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로 나아갈수록 서로 다른 전문성을 지닌 연구자들과의 협업이 중요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 교수는 읽어볼 만한 책으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꼽았다. 과학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라는 이유였다. 김 교수가 특히 주목한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였다. 인간은 홀로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나누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행위하며 살아가는 복수의 인간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유의미성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연구 역시 혼자 완결되는 활동이 아니다. 개인의 질문에서 시작된 연구는 공동체가 축적한 지식과 연구자들의 협업을 통해 발전하고, 다시 공동체의 지식으로 돌아간다. 환자의 고통을 덜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인류애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다른 사람이 이어 갈 수 있도록 기록하고 남기는 태도로 확장된다.

 

 

목표는 높게, 자신에게는 너그럽게

 

연구의 의미를 안다고 해서 매일의 과정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실험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고, 긴 연구 과정에서 지치는 순간도 찾아온다. 김 교수 역시 박사과정 동안 당장 눈앞에 놓인 일을 하나씩 해결하는 데 집중했고, 때로는 연구의 큰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슬럼프를 겪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훈련과 시행착오는 연구 방법을 익히는 시간이 됐다. 당시에는 단지 주어진 일을 끝내는 것처럼 느껴졌던 과정이 이후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목표는 높게 세우되, 자신이 이룬 작은 진전에는 충분히 만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는 외부의 평가를 기다리는 동시에 스스로도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줘야 한다.

 

“아무도 해주지 않으니까 내 스스로 나를 격려해 줘야 해요. ‘그래도 이만큼 했어’, ‘이것도 대단한 일이야’라고요.”

 

원대한 목표만 바라보다 보면 매일의 작은 성취를 놓치기 쉽다. 반대로 당장의 작은 결과에만 머물면 연구를 시작하게 한 큰 질문을 잊을 수 있다. 높은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오늘의 노력을 인정하는 균형이 긴 연구 과정을 이어 가는 데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학을 하는 일이 인류의 지식과 진보에 기여한다는 믿음을 잃지 않기를 당부했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다른 분야보다 빠르고 직접적으로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일이에요. 그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보상을 매번 따로 계산하지 않아도 됩니다.”

 

김필남 교수와의 대화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왜 연구하는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발견한 지식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그리고 그 앎을 통해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연구한다. 한 사람의 연구가 인류 전체를 단번에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함께 쌓아 가는 지식에 작은 문장 하나를 더하고, 다음 연구자가 새로운 질문을 시작할 수 있는 단서를 남기는 일은 가능하다. 

 

연구자의 태도는 더 나은 성과를 향해 나아가는 데에만 있지 않다. 그 성과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되묻고, 자신이 연구를 시작한 이유를 잊지 않는 일. 그것 역시 연구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