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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신경시스템 연구실, 백세범 교수님


인터뷰는 4월 21일 금요일, 교수님의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교수님을 인터뷰하는 것이기에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이 있었지만,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의 연구 철학과 수업 내용 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었기에, 살짝 기대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백세범 교수님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취득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엔젤레스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친 뒤 2013년도부터 카이스트 교수로 임용되어 시각신경시스템 연구실에서 인간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시각 정보 처리에 대한 모델을 세우는 연구를 하고 계신다.

 

교수님의 이력 중 특이하다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학부부터 물리학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현재 하시는 연구는 물리학과에서 배우는 것과 많이 다를 텐데, 이렇게 새로운 것을 하게 되면서 어려움도 많이 느끼고 두려움도 많이 느끼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경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그 부분은 별로 고민이 없었어요. 제가 물리학과에서 박사과정에서 수행한 연구 자체가 뇌과학이었거든요. 과정 중 멘토 역할을 해 주셨던 교수님들의 전공도 물리학, 생물학, 전자공학 등 다양했지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물리학자는 여기까지, 생물학자는 여기까지라는 식으로 연구의 영역을 나누어 버려요. 그리고 그 시스템에 익숙해지다 보니, 우리는 어디까지가 그 전공의 영역인지 따지고, 혹시 조금이라도 그걸 넘어가려고 하면 큰일난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미국에서 가르쳤던 학부생 중에 물리학, 영문학, 그리고 음악, 이렇게 세 분야를 동시에 전공하는 친구도 본 적 있는데, 아무도 그에게 어떻게 그런 조합의 전공을 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 이런 게 인식의 차이구나” 하고 느꼈죠. 따져보면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어서 그걸 선택하면 무슨 문제냐는 논리지요. 오히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초창기 과학계에 큰 획을 그은 사람은 대부분 융합형 인재였어요. 대표적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죠. 현재 가장 중요한 분야로 떠오르고 있는 뇌과학 연구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기여를 하고 있지요. 앞으로 융합형 인재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학과 출신의 학생들이 우리 연구실에 지원을 할 때에도 전혀 불리한 점은 없습니다. 오히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야 서로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면서 문제를 해결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새로운 과에 와서 아직 적응 중인 저에게도 큰 위안이 되네요. 그래도 처음 물리학과를 들어갈 때의 그린 미래의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물리학과를 들어갈 때에는 어떤 모습을 그리시고 계셨나요?

사실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몇 번 바뀌었었지요. 처음 학부때 핵공학과 물리학을 복수전공할 때는 핵융합 이론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후 물리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음향학이었어요. 저의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음악가이셨던 영향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대학을 다닐 때에도 음향학 관련 강좌는 다 들어본 것 같아요.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지요. 음향학 연구에서의 다양한 결과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의 감각신경이 청각 신호를 어떻게 처리하는 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신경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당시 신경과학 연구에서 중심이 되었던 시각신경 시스템과 관련된 분야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이 결국 이렇게 다 이어져 있구나”라고 느꼈었죠. 지금은 시각신경 시스템의 기능과 구조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지만, 당연히 청각을 비롯한 다른 감각신경계의 작동원리를 비롯하여 감각 신호들의 가공, 처리 및 기억 등의 원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결국 우리의 뇌가 다양한 감각 정보들의 처리를 위해 어떤 구조를 만들어 내고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모델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큰 계획이에요.

 

교수님의 관심 연구분야를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제 연구주제 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을 말하자면, 시각 시스템에서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뇌신경 회로의 구조 이론이에요. 말이 복잡하죠? 간단히 말하면 시각 시스템에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 회로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작용하고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떤 분들은 신경과학에서 이 내용은 굉장히 고전적인 분야라고 생각을 할거에요. 하지만 다양한 실험적 결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리를 설명해주는 확실한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에요. 결국 물리학에서처럼 전체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기저 이론을 만들어 내야 모든 결과들이 확실히 이해되겠죠. 이 밖에도 뇌신경과학 연구에서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주제가 많아요. 그 중 기억과 관련된 연구 결과들도 관심있게 보고 있는 내용이죠. 기억이 저장되는 구조와 원리에 관해서도 명확한 모델이 없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해서도 연구하고 있고요. 한편으로 우리가 세운 가정을 검증하기 위해서 몇 가지 인지 실험도 병행하고 있어요. 정리해서 말하면 물리학자들이 몇몇 중심 이론들을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들의 원리를 설명하듯이, 복잡한 뇌의 작용을 간단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뇌의 전체적인 기작을 설명해주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이론을 찾아내자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듣기만해도 재미있네요. 그럼 이번에는 조금 딱딱한 질문에서 벗어나볼까 합니다. 교수님께서 사모님과 같이 다니시는 걸 자주 본 것 같아요. 그걸 볼 때마다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일이 굉장히 바쁘실 텐데 일과 결혼(혹은 연애) 생활을 병행하시지?’라는 것이었어요. 일과 삶을 병행하는 노하우가 있으신지 궁금했습니다.

예전에 본 통계 중에, 미국의 젊은 조교수들의 이혼율이 일반인에 비해 높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별로 놀랍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자신의 일이 바쁜 관계로 가족들간의 관계가 소홀해진 탓이었겠지요. 예전에 한번 몇 분의 노벨상 수상자와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요. 당연히 그분들이 연구와 공부에 관련한 조언을 해 주실 거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분들의 첫 번째 조언은 예상외로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중요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우리가 연구를 하고 일을 하는 이유는 결국 값지고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서인데, 일 때문에 기본적인 삶이 망가진다면 뭔가 모순이겠지요. 가족은 절대 일과 동등하게 비교되거나, 일 때문에 희생될 수도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일은 1순위로 중요하지만, 가족은 0순위에요. 이것만 생각하면, 모든 일의 순서가 정해지고 원칙이 정해져요. 이게 일과 삶을 관리하는 개인적인 노하우인 것 같네요.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때마다 느낀 것은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 외의 연구에 관한 혹은 대학원 생활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수님이 바라는 학생들의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수님의 바라는 이상적인 학생은 어떤 모습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는 학생이었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삶을 살아와요. 성적 혹은 대학이란 목표를 정해놓고, 그 것을 성취하면 자신의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그런 목표와는 상관없이, 어떤 것이 내가 보기에는 중요한 일인 것 같고 재미있는 일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런 자세가 학생 본인을 발전시킬 수 있고 결국 큰 일을 해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교수가 시킨 일을 잘 해오는 학생은 모범적으로 현재의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학생이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거기서 한발짝 더 나가보는 시도를 하는 학생은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교수님에게 지도 학생들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네요.

희망이죠. 포기할 수 없는 희망. 제 지도스타일을 아는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실거에요. 생각외로 학생들을 한계까지 몰아부치는 스타일이라고요. 물론 이 부분은 학생의 능력이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기는 해요. 예를 들어 어떤 학생에게 조금 어려워 보이는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있다면, 저는 이미 그 학생의 능력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분석한 거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내가 어떻게 그런걸 지금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상자속의 벼룩처럼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해 버리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계속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학생이 자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버리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야만 학생들이 진행하는 연구들에서 의미 있는 결과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졸업 이후에도 스스로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독립적인 연구자가 될 수 있겠지요. 많은 경우 학생들이 이런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끔은 이렇게 힘들여서 지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실망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나의 희망이고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것이 교수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저 때문에 때로는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혼나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훗날 이 학생들이 졸업 후 독립된 연구자가 되었을 때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훌륭한 연구자가 되었으면 하기 때문에, 학위 과정 중에 최소한 갖추어야 할 지식과 능력, 그리고 소양은 충분히 교육 시키려고 해요.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훗날 그 과정 덕분에 내가 이렇게 성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연구자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계속 고민하고 계시는 교수님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인터뷰에 응해주신 백세범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좋은 연구를 진행하시고 훌륭한 제자를 양성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사를 마친다.

 

송영조 기자(syj1455@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