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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수님 일단 이렇게 서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아래에 준비된 질문 문항들이 몇가지 있는데요. 읽어보시고 질문과 관련이 있어도 되고, 따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질문과 무관하게 따로 적어 주셔도 됩니다. 작성해야 답신 메일을 주시면 홈페이지에 올릴 글을 다시 정리하고 교수님께 다시 보내 드려 확인 과정을 거칠 예정이니 편하게 원하시는 말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1. 교수님께서는 책이나 강연, 방송 등으로 일반 시민들께도 인지도가 굉장히 높으신 편인데, 그런 것에 비하여 교수님께서 정확히 어떤 것을 연구하시는 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적은 것 같아요. 혹시 연구하고 계시는 분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 드릴 수 있을까요?

 

제가 하는 연구는 ‘의사결정 신경과학’(Decision Neuroscience)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EEG, fMRI 등을 이용해서 정교하게 connectome을 얻거나 촬영하고, Complex network theory, nonlinear dynamics 라는 학문적 틀을 이용해서 궁극적으로는 Brain dynamics를 만들어내는 기본 원리 (fundamental principles)를 찾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가상의 뇌를 만들어 여러 시뮬레이션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 분야를 ‘computational neuroscience’(계산신경과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임상이나 공학에 응용하는 연구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에 오기 전에는 의대 정신과에서 연구원과 교수를 했기 때문에, 주로 정신질환자들의 의사결정 장애를 연구했지요.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의 자살행동이나 중독환자의 습관적 선택 행동 등이요. 지금은 공대에 있기에, 학생들과 Brain-machine interface (뇌-기계 인터페이스, 인간의 의사결정을 뇌활동을 통해 읽은 후 기계가 대신 역할을 수행하는 기술)과 Brain-inspired A.I. (사람처럼 상황을 판단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의사결정하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Q2. 최근에는 Nature지에 논문을 올리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신의학계에서는 외상후 증후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오래된 치료법이 하나 있습니다. 공포기억을 회상하면서 눈을 좌우로 돌리는 행위를 반복하면 공포기억이 소멸된다는 것인데요(EMDR,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sing), 1989년 샤피로라는 학자에 의해 처음 알려졌습니다. 외상후 증후군 환자들에게 임상적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보고되면서 많이 활용되고 있었는데, 아직 그 메커니즘을 밝힌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번에 그 메커니즘을 밝혀 네이처(2019)에 논문을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연구가 어려운 건, EMDR을 하는 동안 환자의 두개골 안의 뇌활동을 정교하게 측정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아서 였는데요, 저희가 이번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착안해 실험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실린더형 원통에 쥐를 넣어두고 LED를 일렬로 배치해 좌우로 빛이 이동하게 해서 공포기억을 가진 쥐로 하여금 눈의 좌우를 돌리게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공포기억이 2-3일 만에 소멸하게 됐지요. 그 과정에서 뇌활동을 살펴보니, 눈을 돌리면 superior colliculus 를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영역이 자극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본 실험은 기초과학연구원의 신희섭 박사님 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진행했는데요, 신희섭 박사님이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내시고 실험을 했는데 계속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하다가, 저희 연구실 백진희 학생이 다른 실험을 하기 위해 그 연구실에 머물고 있다가 우연히 이 실험에 참여하게 되어 결국 노력 끝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게 됐습니다. 

  

Q3. 교수님께서는 KAIST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마치시고 그 이후에 의대정신과를 거쳐서 지금은 뇌 과학에 관련된 분야로 연구를 하고 계시는데요. 이렇게 분야를 바꾸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물리학자로서의 자의식은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뇌활동 및 현상 기저의 근본원리를 찾는데 훨씬 더 관심이 많고, 실험 자체 보다는 우리가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뇌를 마음대로 조절하거나 통제하는 접근을 선호하고요. 그래서 실험하는 연구실과 공동연구를 하거나 대규모 open source data 를 분석하고 있지요. 

 

그런데 박사과정 3년차때, 그리고 미국에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의대 정신과에 가면서 정신병동의 환자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런 순수한 과학 연구들이 궁극적으로는 임상적으로 환자를 치료하거나 공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연구의 50% 이상을 임상연구, 공학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Q4. 지금 교수님이 연구하고 계시는 분야만의 매력이나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 어떤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신경과학이 앞으로 랩 단위의 실험보다는 대규모 실험을 통한 접근, 그리고 그것을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분석과 모델링으로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그런 징조들이 있지요. 여러 병원에서 얻은 환자 수만 명의 유전자 데이터, 뇌파나 MRI데이터를 활용해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connectome data 분석, complex network analysis and nonlinear dynamical analysis 등 고급 분석 기법 적용, 컴퓨터 모델링 접근이 매우 유용한 접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경과학 분야 안에서 ‘의사결정’은 가장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신경과학 분야 중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쪽은 시각 연구, 학습과 기억 등이지만, 결국 주의집중, 감정 그리고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고등한 사고로 확장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경과학의 범위 안에 머물지 않고, 뇌-기계 인터페이스, 뇌 기반 인공지능 등 다양한 뇌인지공학 분야로 확장될 것이라 생각하며, 20-30년 후에는 이 분야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는 분야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연구실은 오늘도 2050년 미래를 미리, 날마다 경험하고 있습니다. 

 

Q5. 교수님께서는 연구 말고도 유려한 말솜씨로도 알려져 있으세요. 교수님 수업이나 강연을 들은 분들로부터 말도 정말 잘하시고 수업 / 강연을 참 재미있게 해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이런 말솜씨를 기르는 데에 어떤 것들이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쑥스럽지만, 누구나 지금보다 조금 더 말을 제대로 하려면, 머릿속에서 생각과 개념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개념이 정돈되어 있지 못하면, 중언부언 헤매게 되지요. 개념이나 예제, 의미 등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 무얼 묻더라도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서 명쾌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은 상태에서, 말하는 법만 연습하면 나중에는 사람들과 ‘빈 대화’만 나눌 가능성이 높지요.  

 

Q6. 또 교수님 이야기를 하자면 교수님의 저서를 빼먹을 수 없는데요. 국민 과학 교양서라고도 할 수 있는 [과학콘서트]는 물론이고요. 얼마전에는 최근 저서 중 하나인 [열두 발자국]이 양주시, 충주시, 대구시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책과 독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은 카이스트에 온 이후로 연구하느라 책을 낼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를 낸지 17년만에 혼자 쓰는 단독저서인 [열두 발자국]을 겨우 냈으니까요. 하지만 책을 준비하는 동안 약 1,000여권 정도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이 우리에게 영감과 통찰을 제공합니다. 저는 우리 학과 학생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분야에 대한 책을 써보길 권해드립니다. 가장 훌륭한 독서는 책을 직접 써보는 일이니까요. 마치 가르치는 과정이 가장 잘 배우는 과정인 것처럼요.  

 

Q7.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교수님 만의 발자취를 남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그동안 연구나 연구 외적인 부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어렸을 때에는 어른들이 ‘한 우물을 파라’고 했어요. 학계는 보수적이었고,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는 일 외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요. 그런 관점에서 저는 평범한 교수 혹은 학자가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비판이나 비난을 받기도 했고요. 

 

다행히 저는 시도했던 분야들에서 나름의 성취들을 이루어 조금씩 칭찬을 받기 시작했지만, 설령 누군가는 그런 성취를 얻지 못했더라도, 한 우물을 파지 않고 분야간의 지류를 만들어주길 기대합니다. 또 학자들이 하고 있는 연구가 어떤 의미인지 사회에 환원해주는 작업에도 꾸준히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학자나 교수, 연구자라는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이 아니라, 내가 정의한 나의 정체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가기를 희망합니다. 

 

Q8.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으며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거나 연구자로서의 꿈을 꾸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전한다면?

 

매주 화요일 목요일 오후에 우리 연구실 학생들과 랩미팅을 하고 있는데, 끝나고 나면 1-2명 정도 학부생이나 외부인들과 면담 신청을 받아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물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신청해서 좀 밀려있긴 하지요  그 시간에 학부생들과 가끔 만나 차 한잔 하면서 고민 나누는 시간 가졌으면 좋겠어요. 진로이든 꿈이든 연애이든. 학교에 있는 동안 교수들을 많이 활용하세요. 감사합니다. 

 

 

 

김태현 기자(gth0918@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