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ng innovative bio-convergent technologies for better human life

과학기술 패러다임의 진화

 

인간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계획한다. 특히 과학자는 계획된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해 오늘을 살아간다. 과학자의 관심은 과거와 현재의 현상을 분석해 다가오는 위험을 줄이고 행복을 늘리는 데 있다. 과학기술의 융·복합 분야를 30년 넘게 연구해 온 필자의 눈을 통해 미래에 대한 비전과 설계도를 함께 그려보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마찬가지로 미래는 오늘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될 것이다. 미래 과학기술에 대한 전망 역시 그동안 인류가 지나온 과학기술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필자는 근대의 역사를 크게 ‘산업혁명의 시대’ ‘전자혁명의 시대’ ‘지식혁명의 시대’로 나누고자 한다.

 

19세기 산업혁명 시대는 ‘에너지의 동력화’가 메가트랜드였다. 당시 과학기술이 지닌 가치와 우수성의 척도는 에너지의 출력과 강도, 효율성이었다. 증기에너지를 피스톤 기관을 이용해 기계에너지로 바꾸듯 동력의 전환이 큰 관심사였다. 이를 위해 기계와 화학공학이 유용한 도구로 쓰여 크게 번성했다.

 

20세기 전자혁명 시대는 ‘에너지의 정보화’라는 격변을 맞이했다. 과학기술의 패러다임도 정보처리의 속도와 용량, 전력소모량으로 바뀌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정보 매체를 활용해 에너지의 용도와 기능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다. 손톱 크기의 반도체에 국회 도서관의 책을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보처리의 속도를 빠르게 하고 정보저장 용량을 늘리며 전력소모를 줄이는 일이 전기를 생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를 위해서는 전자의 이동속도가 더 빨라져야 한다. 그러나 전자의 속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므로 정보를 전달하는 전자가 이동할 거리를 짧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 반도체 집적회로 기술이 등장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전기적 에너지뿐 아니라 비전기적 에너지를 이용한 정보의 처리기술이 나타났다. 전자보다 더 빠른 빛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 극미세 기계로 정보를 감지하는 기술, 잉크방울로 정보를 표현하는 기술, 생체분자의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처럼 정보통신기술(IT)은 바이오기술(BT)과 나노기술(NT)과 융합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현대의 21세기는 지식혁명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고출력의 에너지와 대용량의 에너지를 갖는 것보다 고품질과 다기능, 저비용의 정보를 얻는 것이 더 경쟁력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정보처리의 양과 속도를 초월해 지식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기능을 창출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과거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IT와 BT, BT와 NT의 융합 같은 학제간 연구는 지식혁명의 시대에 필수적이다. 나아가 제품과 제품, 시장과 시장 사이에 융복합이 진전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정보를 다룰 수 있는 하드웨어와 유용한 지식을 추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출연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자연 발생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학제간의 화학적인 결합을 추구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과학자의 자세다. 이것은 내일을 위해 오늘은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스스로가 답을 찾는 과정이다. 또 누가, 언제, 어디서 하느냐는 질문도 남아있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과학자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산·학·연·관의 기관차원의 융·복합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오늘이다.

 

글/조영호 디지털나노구동연구단장·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mems@kaist.ac.kr (2008년 09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