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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모방해 초미세운동 수억분의 1m 정확도로 제어한다 - 디지털나노구동연구단 조영호 교수










생체 근육에서는 액틴과 미오신이라는 미세한 근섬유가 nm 규모로 움직여 전체 근육이나 골격의 거대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사람은 어떻게 계단을 오를까. 벼룩은 어떻게 높이 뛸까. 파리는 어떻게 날아다닐까. 이동이 가능한 생물체는 생체 근육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자기 몸과 팔다리를 움직인다. 이때 생체 근육에서는 액틴(actin)과 미오신(myosin)이라는 근섬유 사이에 발생하는 움직임이 기본단위가 된다. 이를 바탕으로 근육은 빠르고 정교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전체 근육이나 골격의 거대한 움직임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실제 액틴과 미오신이라는 근섬유 사이에 발생하는 움직임은 12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 규모에서 일어난다. 이런 움직임이 나노구동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조영호 교수가 이끄는 ‘디지털나노구동연구단’은 근육에 나타나는 나노구동과 같은 생체 움직임의 구조와 원리를 모방해 초소형 구동기관을 개발해오고 있다.


왜 생체 움직임을 모방하는가

제품을 매우 작게 만들면 에너지와 자원을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의 크기를 아주 작게 하면서 미세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등 성능을 뛰어나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 교수는 “작게 만드는 것과 정밀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며 “나노구동의 정확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2년 연구단에서 생체 근육의 움직임을 모방해서 만든 나노 구동기. 12.4nm의 정확도로 1초에 7200번이나 움직일 수 있다.

기존에 ‘마이크로 전기기계 시스템(MEMS, 멤스)’ 기술을 이용해 구동기관을 마이크로미터(μm, 1μm=100만분의 1m) 수준으로 작게 만들려는 노력은 주로 대형 구동기관을 단순히 축소 모방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금방 벽에 부딪쳤다. 초소형 부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공공정의 오차나 극미세 구동신호의 잡음이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이와 같은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체의 움직임에 주목을 했다. 근육 같은 단백질은 미세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전체가 정교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단은 단백질이나 세포 등 아주 작은 생체의 구조와 동작 원리를 공학적으로 분석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구동기관에 적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즉 극미세 생명체의 구조와 동작 원리를 모방하는 기법으로 초소형 구동기관이 가공공정 오차와 미세한 잡음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노 규모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목표를 두었던 것이다.


근육 모방한 ‘근육 칩’ 개발

연구단은 이미 근육을 모방한 나노 구동기, 일명 ‘근육 칩’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2002년 실리콘을 재료로 만든 가로와 세로가 각각 1.2㎜인 나노 구동기. 이 구동장치는 생체 근육이 전기적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정전기를 이용해 동작하는 원리다. 놀랍게도 이 구동기가 쌀알보다 작은 범위에서 움직이는 정확도는 수십 nm 이내. 나노 구동기는 1초당 최고 7200번까지 직선으로 왕복 운동을 할 수 있다.

이런 구동장치는 어디에 쓰일까. 조 교수는 “나노 구동기는 광 신호를 파장에 따라 분리하거나 원자 단위로 정보를 저장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나노 구동기로 1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에 CD 2장을 기록할 수 있는 저장장치나 유전자 치료에서 유전체를 세포에서 손상된 위치에 정확히 옮겨놓는 장비를 만들 수 있다.

연구단은 같은 시기에 나노미터 이하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고성능 나노 감지기도 개발했다. 최소 0.019nm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기존에 발표된 국내외 감지기에 비해 5배 이상 향상된 성능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나노 감지기는 나노 광부품을 조립하거나 나노 저장장치의 위치를 제어하며 DNA 같은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쓰일 수 있다.

또 연구단은 극미세 광 신호를 제어하기 위해 압전형 근육을 이용한 디지털 회전 반사경을 개발했다. 이 반사경은 망막 주사형 안경 디스플레이에 적용될 수 있다. 즉 빛의 정보를 안경에서 쏘고 망막을 스크린으로 이용하는 디스플레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최근 차세대 잉크젯 분사기술 발표









극미세 잉크 분사기의 전체 모습. 잉크가 분출되는 노즐 구멍이 여러 개 보인다.

올해 연구단은 1월 28일부터 2월 4일에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 산하 멤스 학회에서 주목받을 만한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극미세 잉크분사기와 극미세 세포 계수기가 바로 그것. 먼저 극미세 잉크분사기는 잉크젯 프린터의 해상도를 높게 유지하면서 고속으로 인쇄할 수 있는 최초의 장치. 이 장치의 핵심은 잉크를 내뿜는 노즐 구멍 하나에서 크기가 수조분의 1에서 수십조분의 1리터(ℓ)까지 서로 다른 잉크 방울을 분사할 수 있는 원리다.

잉크젯 프린터는 노즐 뒤쪽에서 보통 전기로 가열시키면 공기방울이 생기고 이 공기방울의 압력이 채워져 있던 잉크를 밀어내는 방식이다. 기존 잉크젯 프린터에서 해상도가 높은 인쇄물을 얻으려면 작은 구멍의 노즐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인쇄 속도가 느린 반면, 이 분사기로는 다양한 크기의 잉크 방울을 활용해 고해상도를 유지하면서 인쇄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미세한 부분에서는 작은 잉크 방울로 찍고 배경처럼 단순한 부분에서는 큰 방울로 찍기 때문.
조 교수는 “노즐 구멍 뒤쪽으로 흐르는 전류의 경로와 양을 바꿈으로써 가열 면적이 달라지고 잉크 방울의 크기가 변한다”며 “이는 어떤 무게의 물체를 들 때 몇 개의 근육 단위가 사용되는가 하는 상황을 모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단이 개발한 극미세 세포 계수기는 지름 10μm인 통로를 통해 간편하게 세포나 혈구의 수를 셈으로써 그 농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장비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2㎝인 칩 형태의 이 계수기는 기존 장비와 달리 정확히 유량을 제어하지 않아도 되고 크기가 작은 게 장점이다.
극미세 세포 계수기는 다른 분석 장비와 함께 하나의 시스템을 이룰 경우 혈액 한 방울로 질병을 진단하는 칩에 쓰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 칩은 혈액을 혈장과 혈구로 나누고 다시 혈구 중에서 적혈구와 백혈구로 분리한 후 계수기로 각각의 수를 셈으로써 질병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크기가 다른 혈구도 셀 수 있다.

예를 들어 빈혈이나 백혈병이 있는 사람은 적혈구의 수가 다르다. 적혈구의 수를 파악해 빈혈 혹은 백혈병 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것이다.


극미세계의 원천기술









가로와 세로가 각각 2㎝인 칩 형태의 극미세 세포 계수기. 지름 10μm인 통로를 통해 간편하게 세포나 혈구의 수를 셈으로써 그 농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21세기에는 정보통신, 컴퓨터, 생명공학 등에서 빛, 열, 유체, 화학적·생물학적 미세 입자로 표시된 정보를 나노 규모에서 가공하고 제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연구단은 매우 정밀한 나노 구동기를 개발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먼 거리 사이에서 빛을 중계하는 광중계기나 망막을 스크린으로 사용하는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도 구동장치의 움직임은 나노미터 규모의 정확도가 필요하다.

또 광 저장장치의 경우에도 정보를 기록하는 정확도가 현재의 수μm에서 수nm급으로 좋아진다면 집적도가 높아질 수 있다. 조 교수는 “이렇게 된다면 현재 DVD 용량의 정보를 기록하는 데 동전 크기면 충분할 것”이라며 “정보를 정교하게 써야 하는 만큼 수nm의 정밀도를 갖는 나노 구동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측면에서 본다면 연구단은 나노기술(NT) 영역의 물리현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바이오기술(BT) 영역의 생체 움직임에 대해 공학적으로 모방해 정보기술(IT) 및 바이오기술(BT)과 관련된 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나노 구동기술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NT, BT, IT의 융합 분야에서 미래 산업에 필요한 실용적이고 검증된 과학기술의 근간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나노 구동기술은 극미세계의 원천기술인 셈이다.


● 조영호 교수 약력

1980년 영남대 기계공학 학사(공대 수석 졸업)
1982년 KAIST 기계공학 석사
1991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마이크로머신(MEMS) 박사
1991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센서 및 액추에이터 센터 박사후 연구원
1991-1994년 KAIST 기계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
1994년-현재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2000년-현재 디지털 나노구공 연구단 단장
2002년-현재 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2002년 과학기술부 ‘올해의 나노 바이오 과학자상’
2003년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 국제 멤스 학회 대회장










디지털나노구동연구단은?










KAIST 조영호 교수가 이끄는 디지털 나노구동 연구단에 소속된 연구원들과 행정지원 인력.

연구단은 2000년 과학기술부 창의적 연구진흥사업단으로 선정된 후 아주 작은 생명체의 구조와 동작 원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의 극미세 구동소자를 개발하는데 도전해 왔다.

연구단의 단장인 조영호 교수는 한국에 멤스 기술을 뿌리내리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교수는 1990년 멤스 기술의 발생지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극미세 정전 구동기를 개발해 멤스 분야에서 최초의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에 돌아온 후 국내 대학, 연구소, 기업 등에 생소한 멤스 기술을 소개하는 ‘멤스 전도사’로 활약했다.

1990년 그는 대한기계학회에 멤스 분과를 설립해 미국기계학회 멤스 분과보다 앞서 학회 활동을 시작했고 1994년에는 국내 최초로 대학원에 멤스 강의를 개설했다. 2003년에는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가 주관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멤스 학술대회인 ‘IEEE 멤스 학회’에서 대회장을 역임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조 교수는 지난 10여년간 초소형 센서 및 구동기를 연구 개발하는 데 매진해 왔는데 초소형 부품을 만들 때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생명체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이 같은 창의적 발상에서 디지털 나노구동 연구단이 탄생했다.

연구단은 그동안 생체 근육을 모방한 ‘디지털 나노 구동기’, 나노 감지기, 초소형 잉크분사기, 초소형 세포 계수기 등을 개발했고 2000년 이후 관련 연구결과를 국내외 학술지에 41편의 논문으로 게재했다. 특히 11편이 SCI 학술지에 실렸다. 관련 특허는 국내 6건, 국외 1건 총 7건에 대한 등록을 마쳤고 국내 19건, 국외 2건 총 21건은 출원 중에 있다. 이 가운데 디지털 미소동력장치에 관한 특허가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연구단에서는 박사급 연구원 1명, 박사과정 연구원 10명, 석사과정 연구원 6명 등이 미래 산업을 획기적으로 바꿀 초소형 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2005년 0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