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ng innovative bio-convergent technologies for better human life

bioeng_admin 2006-12-28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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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모방한 미니 기계 만든다
코끼리를 개미만큼 줄이면 잘 움직일 수 있을까. 우선 다리가 체격에 비해 너무 두꺼워져 걷기 불편할 것이다. 또 작아진 내장이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작게 만들 때 중요한 점은 단순히 크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변수를 고려해 제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조영호 교수는 이 같은 기술의 열쇠를 쥐고 있다. 생체모사 나노기술(Bio-inspired Nanotechnology)의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움직임을 모방하는 게 작은 기기를 제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해법”이라고 말하는 조 교수를 지난 주 KAIST에서 만났다. 조 교수는 현재 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일환으로 운영 중인 디지털나노구동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디지털나노구동연구단원들. 앞 줄에서 오른쪽 세 번째가 조영호 단장이다.
조 교수는 “작으면서도 정확히 움직이는 극미세 구동기를 만들려면 정량적인 수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본근육섬유의 움직임이 근육과 골격의 움직임을 만든다’는 생물체의 운동 원리 외에 ‘얼마나, 어떻게’라는 수치적인 구조와 원리를 분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기술 또는 체계를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멤스, MEMS)이라 한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원반을 던지고 100m를 달리는 근육의 움직임은 액틴과 미오신이라는 근섬유 사이 12나노미터(1nm=10억분의 1m)의 움직임에서 시작한다. 생체 최소 단위의 움직임을 먼저 실험적으로 알아내는 과정이 생체 모사의 기본인 것. 생체의 움직임을 파악을 한 뒤 나노와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기기 움직임에 이를 적용, 극미세 구동기를 만든다.

 

이 같은 복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연구단은 기전(Electromechanics), 광(Photonics), 열유체(ThermoFluidics), 바이오매체(Biomedia)팀을 운영하고 있다. 조 교수는 “각 팀이 협력해 생물체의 극미세 구조와 원리를 정량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단의 멤스 연구는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2년에 연구단은 단백질이나 세포 등 매우 작은 생체의 구조와 움직임을 분석, ‘근육칩’을 개발했다. ‘근육칩’을 이용하면 1원짜리 동전 크기 저장장치에 CD 2장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 ‘근육칩’을 쓰면 유전체를 세포에서 손상된 위치에 정확히 옮겨놓는 장비를 만들어 유전자 치료에 응용할 수도 있다.

 

2005년에는 잉크젯 프린터 헤드에 멤스 기술을 적용, 잉크방울 크기를 수조 분의 1 또는 수십조 분의 1리터 단위로 제어하는 극미세 잉크분사기를 개발했다. 정확하게 몸 속의 세포나 적혈구를 셀 수 있는 초소형 세포계수기도 연구단의 작품이다. 이 극미세 구동기들은 기존 기기가 단순히 큰 구동기관을 작게 만들면서 가공 공정의 오차나 극미세 구동 신호의 잡음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계를 극복했다. 미세하지만 정확히 움직이는 근육처럼 생체의 구조와 원리를 적용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구단은 이제까지 이룬 연구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디지털나노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차세대 기술에도 연구단의 발길이 닿고 있다.

 

연구단은 최근 시신경 하나하나에 빛을 쪼이는 나노 구동기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연구 초점은 망막에 직접 영상을 띄우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눈에 엄청나게 큰 영상이 맺히게 된다. 일정한 거리를 띄우고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는 지금의 시청방식과는 개념부터가 다르다. 요즘 세계 전자업체들이 LCD 패널 확대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이 같은 연구가 실용화되면 만만치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연구단은 또 초소형잉크젯 프린터의 기능을 향상시켜 잉크뿐만 아니라 금속분사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회로판에 도선을 ‘인쇄’할 수 있다. 회로판에 금속막을 입혀 불필요한 부분을 녹여내는 기존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다.

 

생체모사 디지털나노구동기의 개념(좌)과 이 개념으로 취급 가능한 에너지 정보(우). 전기적 신호에 의해 움직이는 극미세 기계적 도구를 이용해 극미세 광, 열 유체, 바이오 물질 등을 디지털적으로 제어, 처리, 분석, 가공할 수 있는 나노구동기를 만든다. 조 교수는 “바이오와 나노, 전자 정보 기술이 융합된 멤스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생체모사 자체보다 이를 활용한 제품을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앞으로 연구결과가 컴퓨터, 생명공학, 산업체, 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라며 “나노 크기의 미세기기를 가공, 제어하는 데 유용한 기초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글/남연정 동아사이언스 기자 namyj@donga.com (2006년 1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