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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범 교수>

 

이번 달에는 카이스트에서 처음 시도하는 임용 10~20년간 논문 평가를 받지 않는 싱귤러리티 교수로 선정되신 백세범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교수님께서 선정되신 싱귤레리티 교수 제도와 시각신경시스템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연구들에 대해 질문을 몇 가지 드리려 합니다.

 

Q1. 현재 시각신경시스템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연구들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핵심만 요약하면 “계산뇌과학적 방법”에 기반하여 “뇌기능의 발생”을 연구합니다. 가끔 농담으로 손에 물을 묻히지 않는 랩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고전적인 뇌신경과학의 동물 실험 대신 이론 및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법을 사용하여 여러 재미있는 문제들을 풀고 있습니다. 이론 연구실 답게 연구 주제 선택의 자유도가 높다 보니 현재 수행하는 연구들은 랩 이름에서 보이는 것보다 스펙트럼이 꽤 넓다고 할 수 있겠네요. 참고로, 현재의 연구실의 명칭이 저희 랩의 연구 내용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만간 더 좋은 이름으로 변경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주로 시각 인지와 관련된 뇌신경망의 기능들의 발생 원리를 탐구합니다. 이 부분은 뇌가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여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첫번째 단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뇌기능 연구에 대한 기반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감각 인지 기능을 수행하는 뇌신경망과 이를 모방하여 동작하는 인공신경망에서의 중요한 차이점들에 집중하여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 연구를 확장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감각 정보의 재구성 및 저장과 연관되는 뇌의 작업기억 기능을 비롯하여, 고등 인지과정에서 필요한 능동적, 선택적 정보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신경망 모델을 구현하는데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들은 주요 뇌기능에 대한 설명 가능한 이론을 최초로 제시할 뿐 아니라, 뇌와 보다 가까운 인공신경망 개발에 적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편으로 교내/외, 국내/외 여러 연구자분들과 협업을 통해 동물실험 데이터를 분석하는 툴을 개발하거나, 고전적인 생물학적 연구 방법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을 설명하는 모델을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요 뇌질환의 설명 가능한 이론을 제시하는 등 “이론 및 계산적 모델”이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2. 교수님께서 이번에 카이스트에서 처음 시도하는 임용 후 10~20년간 논문 평가를 받지 않는 싱귤래리티 교수로 선정되셨습니다. 굉장히 큰 이점이 있음과 동시에 많은 시선이 집중되어 부담이 되리라 생각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이 모여 계시는 카이스트에서 이런 상징성을 가지는 자리에 선정되어서 우선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운이 많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선정 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축하해 주셨는데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학교 안에서도 여러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지만, 실제로 많은 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은 학교 밖에 계신 분들로부터 축하를 받을 때인 것 같습니다. 외부에서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싱귤래러티 교수에 대해 알고 계실 뿐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시더군요. 

싱귤래러티 교수 선정 후에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 있는 연구”에 대한 조금 다른 시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소위 인기있는 연구 주제를 잘 따라가는 imitator가 되어서 많은 연구 결과를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innovator가 되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연구자로서 가장 흥미를 느끼게 되는 부분입니다. 바라건대 앞으로는 단순한 논문 숫자라던지, impact factor, 연구비 액수 등 여러가지 정량적 지표들을 따져서 연구를 평가하는 문화가 좀 달라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3. 교수님의 다른 인터뷰에서 뇌신경회로 기능의 원리에 대한 기저 이론을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상당히 중요하지만 동시에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한 목표처럼 보입니다. 혹시 이러한 목표가 싱귤래러티 교수 제도에 지원하신 것과 관련이 있나요?

이 주제는 사실상 연구자로서 제 평생의 연구 목표이고, 이번 싱귤래러티 교수에 지원했을때 제출한 연구 계획의 주요 내용이기도 합니다. 

뇌신경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이 분야의 바이블과 같은 교과서가 하나 있는데 제목이 “Principles of Neural Science” 입니다. 제가 대학원생일 때 처음 이 책을 공부하면서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은 “이 두꺼운 책의 내용중 어느 부분이 principle이라는 말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현재의 뇌신경과학 분야는 여러 실험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많은 관찰 결과들(observations)이 쌓여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아직 기본적인 현상들에 대한 이해가 정립되지 못하고 관찰 결과들만 축적되어 있었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현상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 결과들을 계속 얻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 기작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반드시 다음 단계에서 이러한 관찰들을 퍼즐의 조각들처럼 잘 짜맞추어서 그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principle)를 찾아내야 하겠지요. 고등 생물의 뇌와 같은 복잡계에서 무조건적으로 환원주의적인 단순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요, 적어도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의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 가능한 기저 원리는 존재할 것이고, 이 원리들을 어느 정도 찾아내고 이해한 후에야 우리는 “뇌를 이해한다”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문제는 혼자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시간에 끝을 볼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적어도 이러한 기저 이론의 정립이 없이는 뇌기능의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인식하게 만들고, 이러한 방향으로 노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하는 초석이 되는 것이 제 연구의 목표입니다.

 

Q4.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많은 연구들이 기존의 시각인 뇌 기능은 학습과 훈련을 기반으로 발생하는 것과는 다르게 선천적이고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원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뇌신경회로 기능 원리에 대한 기저 이론은 학습에 의존하지 않는 인공 신경망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향후 연구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시나요?

언급한 내용처럼 지금까지 발표했던 상당수의 논문에서 “학습 없이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뇌기능”에 대한 연구를 해 왔습니다. 물론 이 결과를 단순히 “학습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인공지능” 개발 등에 활용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본 연구의 목적은 이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우선 “지능의 기원” 또는 “지적 생명체 발생 및 진화의 원리”를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보통 계산적 모델이나 인공신경망을 이용해 뇌의 특정한 기능을 구현할 때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지적 기능”을 요구하는 모델을 사용합니다. 아무리 단순한 학습 모델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는 이미 상당한 정도의 인지 기능이나 논리적 연산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런 기본적인 기능들조차 가능하지 않은 “맨 처음”에는 어떤 일이 가능할까요? 만약 지적 생명체가 정말 오랜 시간동안 우연히 발생하고 진화했다고 하면 그때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물리적 조건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야 그런 일이 가능해질까요? 현재 우리 랩에서는 이런 종류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계속 진행된다면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우선 지능을 갖춘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떤 방식으로 고등 생명체의 지적 기능들이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지금처럼 부분적으로 뇌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인공 신경망 모델을 만들어 내는 수준이 아니라, 뇌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지적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컴퓨터와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계산적인 모델을 구현할 수도 있고, 실제 뉴로모픽 하드웨어를 뇌와 같이 설계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나가서 생물학적인 방법으로 인공적인 생명체의 뇌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Q5. 아직 많은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혹시 싱귤래리티 교수로 선정되신 후 연구실이나 교수님께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또한 앞으로 교수님의 연구 방향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점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한가지 꼽자면 홈페이지나 교수 소개에서 한 줄 더 적을 내용이 생겼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그럴 듯 해 보이기도 하네요. 외국 대학 교수님들의 경우 직책 앞에 여러가지 종류의 endowed 또는 chair professorship 명칭이 붙기도 하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싱귤레러티 교수 선정 때문에 연구에 있어서 달라질 것은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방향 역시 이전과 같이 “중요하고, 가치있으며, 재미있는 주제에 대한 탐구”를 모토로 하여 꾸준한 연구를 지속할 생각입니다. 

 

Q6. 마지막으로 연구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생각 없는 배움은 공허하고, 배움 없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하네요. 재미있게도 연구에 있어서도 잘 들어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연구를 시작하기 이전에 여러분들이 경험했던 교육시스템에서는 “생각없이 배우기만 해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연구에 있어서도 같은 방식을 사용하여 성공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 공부해서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연구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생각만을 하게 되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인기있는 주제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생각 없는 배움은 이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고 왜 중요한가에 대한 답을 생각한 뒤에, 그 대답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계속 다시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이 보기에 그럴듯한 생각이 아니라,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서 제대로 답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생각을 다지고,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확고히 말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재훈 기자 (wjswogns1206@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