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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생물학 및 바이오영감공학 연구실 조광현 교수님 인터뷰

어떤 계기로 시스템생물학을 연구하게 되셨나요?

난 원래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전자공학에도 분야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제어공학을 전공했어요. 제어공학은 복잡한 시스템을 분석하고 모델링 해서 궁극에 시스템을 원하는 방향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학문이에요. 전자공학은 주로 산업시스템을 다루니까 산업용 로봇 팔을 원하는 궤적을 따라 이동시키거나 미사일을 원하는 목표로 맞추는 등의 일에 사용되지요. 제어공학의 역사는 200여 년 정도로 오래되었어요.

그렇게 제어공학을 연구하고 전자공학과 교수가 되고 나서 문득 우리의 몸을 생각해보니 인체도 굉장히 거대하고 복잡한 제어 시스템인데 공학적 관점에서 이 생명체의 동작 원리를 연구한 건 찾기 힘들었어요. 그때가 1999년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생화학, 분자생물학, 면역학 같은 생물학 공부를 했지요. 굉장히 놀라웠던 건, 내가 공부했던 분야는 수학과 물리학이라는 탄탄한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었는데 생물학은 원리에 대한 설명이 진화론이나 멘델의 유전법칙 외에는 찾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생물학은 마치 굉장히 다양한 지식을 옆으로 쭉 펼쳐놓은 백과사전 같았지요.

세포 하나만 보더라도 무수히 많은 분자가 있고 이들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한 분자 네트워크를 형성하지요. 분자 개개의 역할을 네트워크라는 전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공교롭게도 그때가 2000년대 초반 휴먼 지놈 프로젝트가 끝나는 시점이었어요. 많은사람이 에이즈나 암 같은 질병이 모두 극복 될 거라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죠. 기존의 전통적 접근 방식으로는 복잡한 생명의 원리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생명을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바라보고 수학이나 물리학, 공학적 접근법을 가져와서 이해하려 시도하게 되고 마침 정량적 실험과 분석을 할 수 있는 측정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스템생물학 분야도 함께 발달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의 연구 내용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주로 암과 같은 복잡한 인체 질환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어요. 기존의 실험 결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정보를 집대성한 후 모델을 이용한 분석 과정을 거치지요.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시스템생물학 연구는 모델링과 분석이라는 이 두 과정을 거친 것 같아요.

 

자료 조사와 컴퓨터 모델링이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군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시스템생물학의 실험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우리 실험실은 컴퓨터 모델링과 분자 세포 생물학 실험도 함께 진행해요. 예를 들어 대장암 세포 억제에 대해 연구를 한다면 먼저 기존의 주요한 분자를 문헌에서 찾고 각각의 관계에 대한 수학 모델을 만들지요. 모델이 완성되면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러 요소를 조절해 분자 타깃을 찾고 정말 분자 타깃이 대장암 세포 억제에 효과가 있는지 실제 세포에 적용해 효과를 실험하지요.

 

컴퓨터 모델이 맞는지는 어떻게 검증하나요?

모델이 완성되면 일차적으로 다양한 자극 조건에서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기존 문헌 결과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해요. 다음으로 간단한 자극을 가해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은 후 생물학적 실험을 통해 결과를 얻고 그 둘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방식이죠.

 

전통적 생물학 실험과 컴퓨터 모델링은 사용되는 기술이 굉장히 다른 데 그 둘을 모두 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 경우는, 한 학생이 컴퓨터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에 대한 기술을 잘 익힌 후 자신의 가설을 세우고 직접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해 보는 거예요. 물론 쉽지는 않죠. 하지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설을 정립하고 실험할 분자를 미리 정할 수 있어서 기존의 생물학 실험보다 시행착오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어요.

 

시스템생물학적 접근 방식이 기존의 생물학 실험실에서 정말 많이 쓰이고 있나요?

외국은 상당히 보편화 되어 있고 우리나라는 그 물결의 초입에 있다고 느껴요. 현재 많은 생물학 실험 자료가 공개되고 데이터베이스화되고 있어요. 이런 데이터가 점점 집적되니까 지식에 기반을 둬 모델을 만들고 분석하는 시스템생물학 연구는 더 활성화 될 거에요. 기존 생물학과 학습 과정이 달라서 난해한 점이 있지만, 생물학을 공부하는 새로운 세대는 프로그래밍과 수학 모델링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서 시스템생물학의 도구를 더 자연스럽게 익히고 활용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인공지능을 생물학 연구에 도입하려는 시도도 최근 다양하게 이루어지는데 시스템생물학과는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요?

예를 들어 항암 치료를 생각해 보죠. 항암 치료 결과에 대한 기존의 데이터가 많이 있어요. 이를 이용하는데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인공지능을 통해 기계 학습을 시켜서 약물에 대한 결과를 예상해 보는 것이지요. 이 방법의 장점은 매우 많은 데이터 학습을 통해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 전략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거지만 그런 치료 전략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어요. 만약 의료진의 결론과 인공지능을 통한 결과가 다를 경우 선택의 문제가 발생해 곤란한 경우가 생기지요. 시스템생물학은 메커니즘에 기초한 모델을 사용해서 근거를 두고 설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모델 자체의 불안정에 의한 오류가 있을 수 있지요. 이 두 가지의 장점을 잘 결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앞으로 연구가 발전해야겠지요.

 

생물학적 연구 이외에 산업적인 측면에서 시스템생물학이 활용되기도 하나요?

가장 큰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산업 분야가 신약 개발 분야에요. 새로운 약을 하나 개발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이 들어요. 그에 비해 성공률은 매우 낮지요. 100개의 신약이 개발되기 시작한다면 최종 시장에 나오는 건 5개 정도라고 해요. 시스템생물학을 이용하면 신약 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실제 이러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어요. 접근이 쉬워진 만큼 벤처 기업이 신약 개발을 하는 것도 더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죠. 또 다른 분야는 화장품 산업이에요.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동물실험을 통해 개발된 미용 제품은 판매 허가가 나지 않게 법이 바뀌었어요. 따라서 동물 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컴퓨터 가상 실험이 큰 이슈에요. 컴퓨터상의 독성 실험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정부에서 준비 중이고요. 시스템생물학은 기초 연구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실제 산업 분야에도 가까이 와 있어요.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하실 계획이신가요?

암이나 노화 같은 대부분의 생명 현상은 비가역적이지요. 이런 비가역적인 생명현상을 가역화할 수 있는 원리를 찾아 제어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싶어요. 암세포의 정상세포화, 노화세포를 젊은 세포화할 수 있는 제어 기술을 정립하는 게 목표에요. 불가능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암세포가 자연적으로 정상세포가 되는 경우가 종종 보고되기도 하고 ‘야마나카 팩터’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든 이미 분화가 끝난 세포를 다시 역분화시킬 수 있기도 하잖아요. 일차적 목표는 악성 암세포를 양성 암세포로 환원 시키거나 암세포의 전이능력이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거에요. 암세포를 정상 세포처럼 환원시킬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할 수 있다면 기존 항암제보다 부작용도 적고 마치 암을 감기나 만성 질환처럼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해요.

 

연구하다 보면 잘 될 때보다 잘 안 될 때가 더 많게 느껴져요. 교수님은 연구에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과학자로서 흔들림 없이 연구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건 자신의 인생을 관통하는 질문이에요. 연구의 중심에 자신만의 질문이 있어야 해요. 우리 학생들에게도 늘 이야기하지만, 어떤 연구 주제를 정할 때 단편적 연구에만 집중하는 건 좋지 않아요. 조금 거창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과학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나의 연구 주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역사적 통찰을 가지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나만의 질문을 가지고 연구를 하면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쉬운 일은 아니에요.

연구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결코 회피할 수 없어요. 기술적으로도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나는 운동하는 걸 좋아하고 산책하는 것도 즐겨요. 학생들에게도 운동을 많이 권한답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다른 방법은 책 읽기. 꼭 과학 도서가 아니더라도 역사서나 에세이를 즐겨 읽어요. 틈나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해서 세종도서관에도 자주 가요.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으신지요.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라는 책을 권하고 싶어요. 연구 분야를 떠나 읽어보면 좋아요. 후쿠오카 신이치라는 일본인 과학자가 쓴 책인데 유전자 녹아웃 마우스(knock-out mouse)에 대한 실험을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했는데 실패하면서 깨달은 이야기와 함께 박사과정과 박사후과정을 거치며 느끼는 과학자로서의 삶, 과학을 대하는 태도, 생명에 대한 태도에 대한 에세이에요.

연구에만 집중하다 보면 한 문제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책을 읽으면서 문제를 멀리서 조망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요. 연구실 연말 송년회 때 선물 교환을 하면 나는 항상 책을 선물합니다. 최근에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했었네요. 좋은 책을 고르기가 어렵다면 잘 알려진 고전을 골고루 읽기를 권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대 물리학에서 많은 과학자가 물리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궁극의 통일된 이론을 찾고자 노력했잖아요. 생물학 분야도 이런 이론이 있을 거로 생각하시나요?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고 하지요. 현재 생물학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은 진화론이에요. 진화론에 버금가는 시스템생물학에 기반을 둔 이론을 정립하는 게 큰 꿈이지요. 생명현상에 대한 제어 이론을 하나 개발하는 게 저의 소망입니다. 지금 하는 연구를 십 년쯤 해서 그 결과를 정리할 시점에는 생명의 시간이라는 책을 한 권 쓰고 싶어요.

 

김래영 기자 (ry_kim@kaist.ac.kr)